일본 유녀들의 하루 1

 일출과 함께 시작하는 힘든 하루


『玉屋内若紫』

세련된 체크무늬 기모노를 입은 花魁(오이란, 고급유녀), 머리장식이 눈길을 끈다.(『玉屋内若紫』)

유녀에는 계급이 있는데, 고급유녀는 花魁(오이란)이라 불렸고 신인이나 하급유녀는 新造(신조우)라고 불렸습니다. 이 둘은 받는 대우가 전혀 달랐다고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평균적인 유녀의 하루를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또 에도시대의 시간은 지금과는 달리 새벽의 시작과 해질녘의 끝을 기준으로 밤낮을 달리하는 시법(不定時法)을 썼기에 이 글에서 소개하는 시간은 현대의 시간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럼 유녀의 24시간을 탐구해 봅시다. 


●이른 아침 6시(卯の刻/明け六つ)●

写真:浅草寺

도쿄 아사쿠사에 위치한 센소지(浅草寺)

浅草寺の早朝さんぽを体験。時の鐘の音声付き! | 体験じゃぱん

센소지에 있는 시간을 알리는 종(浅草寺の時の鐘)

쿵~ 하고 센소지의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려 퍼집니다. 동틀 녘, 유녀와 하룻밤을 지낸 손님들도 이제는 집에 돌아갈 시간입니다. 


吉原大門図(小形江戸名勝図シリーズ) 文化遺産オンライン

요시와라의 대문 

이 쯤 되면 요시와라(도쿄에 있던 유곽)의 하나밖에 없는 출입구인 大門(おおもん, 유곽의 정문)의 문도 열립니다. 


유녀들은 한밤중이더라도 손님이 깨어나면 같이 일어나고, 그 후에는 손님이 돌아갈 채비를 도왔습니다. 그리고 "벌써 헤어질 시간이라니... 꼭 다시 와주세요"라고 말하며 이별을 아쉬워했습니다. 


물론 영업용 멘트입니다만 이것을 「後朝(きぬぎぬ)の別れ(동침했던 남녀의 이별)」라고 했습니다. 


『青楼絵抄年中行事』より/十返舎一九 著・喜多川歌麿 画

『青楼絵抄年中行事』(喜多川歌麿 画)

위 사진은 유곽에서 동침했던 남녀의 이별을 그린 그림입니다. 아직 어둑어둑한 기루(창기를 두고 영업하는 집) 안에서 손님이 한창 돌아가려 할 때, 유녀들이 계단 쪽까지 손님을 배웅하며 손님이 돌아갈 채비를 돕고 있습니다. 


손님이 VIP인 경우 유곽의 출입구까지 배웅하는 서비스도 있었다고 합니다. 


손님을 보낸 후, 유녀들은 방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잠자리에 듭니다. 한밤중이더라도 손님이 깨어나면 유녀도 같이 일어나야만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기 때문에 손님과 같이 있는 시간은 숙면을 취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고급유녀인 花魁(오이란)에게는 개인실이 있었습니다만, 하급유녀나 유녀 견습생(禿, 카무로: 유녀들이 부리는 소녀) 같은 경우에는 넓은 방에서 다 같이 합숙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겨우 찾아온 취침시간에도 하급유녀들에게 사생활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오후 10시(巳の刻)●

『青楼十二時』「辰ノ刻」(喜多川歌麿 画)

『青楼十二時』「辰ノ刻」(喜多川歌麿 画)

좋은 아침입니다. 다시 일어날 시간입니다. 


일어나면 아침 목욕을 할 시간입니다. 화재가 빈번했던 에도시대에는 집 안에 목욕탕이 없었고 대중목욕탕인 湯屋(유야,ゆや)를 이용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時世粧年中行事之内一陽来復花姿湯』(歌川芳幾 画)

『時世粧年中行事之内一陽来復花姿湯』(歌川芳幾 画)

그럼에도 요시하라에 있는 기루에는 유녀들이 이용할 수 있는 목욕탕이 있었다고 합니다. 가끔은 기분전환으로 기루 안에 있는 목욕탕을 쓰기보다 대중목욕탕에 갔던 유녀들도 있었다고 하네요. 


참고로 유녀들이 머리를 감는 것은 달에 한 번이었다고 합니다: https://timeonlyone.blogspot.com/2021/09/blog-post_87.html


각 기루마다 '머리 감는 날'이 따로 정해져 있었고 많은 유녀들이 머리를 감아야 해 그날은 꽤나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風呂上りの花魁(喜多川歌麿 画)

목욕을 마친 고급유녀(花魁, 오이란), 유녀 견습생 (禿, 카무로)가 차를 건네주거나 부채로 부쳐주거나 하여 부지런히 시중을 드는 모습喜多川歌麿 画)

목욕이 끝났으면 늦은 아침을 먹을 때입니다. 개인실이 있는 고급유녀는 자신의 방에서 식사를 했지만 하급유녀나 카무로들은 1층의 큰 방에 있는 길쭉한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식사를 했습니다. 


『昔唄花街始(むかしうたくるわのはじまり)』より(式亭三馬 作・歌川国貞 画)

『昔唄花街始(むかしうたくるわのはじまり)』より(式亭三馬 作・歌川国貞 画)

위의 사진은 어느 기루의 1층을 그린 사진입니다. 넓은 뜰과 부엌에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왼쪽 사진의 중앙에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보입니다만, 자세히 보면...


食事をする禿たち(遊女見習いの少女)(式亭三馬 作・歌川国貞 画)

밥을 먹고있는 유녀 견습생(禿, 카무로)들 式亭三馬 作・歌川国貞 画)

1층에서 식사 중인 견습생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큰 밥통에서 밥을 푸고 있는 사람도 보입니다. 


참고로 기루의 식사는 기본적으로 매우 검소했다고 하는데, 쌀밥, 미소된장국, 야채절임 정도를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고급유녀가 된다면 다른 반찬을 배달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급유녀와 유녀 견습생들은 손님이 전날 밤에 먹다 남긴 것을 몰래 확보해 두고 아침밥으로 먹을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침밥을 다 먹었다면 몸단장을 해야 할 때입니다. 


花魁が鏡を見ながら白粉を塗っています(『吉原時計』「酉ノ刻 暮六ツ」歌川国貞 画)

고급유녀(花魁, 오이란)가 거울을 보며 백분으로 볼터치를 한다 (『吉原時計』「酉ノ刻 暮六ツ」歌川国貞 画)

몸단장이 끝나면  (유녀들이 낮에 기루의 격자창 안에서 호객하는)「昼見世(히루미세)」가 시작되는 시간까지는 자유시간입니다. 


お客からの手紙を見せ合う遊女(『青楼十二時』「午ノ刻」 喜多川歌麿 画)

『青楼十二時』「午ノ刻」(喜多川歌麿 画)

위 그림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유녀들이 몸단장을 하면서 손님에게 받은 편지를 서로 보여주고 있는 그림입니다. 


"있잖아, 저번에 온 손님에게 이런 편지를 받았어, 정말 어이없지 않아?"라던가 이런 말을 주고받았으려나요? 좁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유녀들은 단골들과 잘 알고 지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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