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2

[내용]

초기 페미니즘


[인물]

소피아 엘리자벳 브레너(Sophia Elisabet Brenner), 마가레타 몸마(Margareta Momma), 헤드위그 노던프릿츠(Hedvig Nordenflycht), 캐서리나 알그렌(Catharina Ahlgren)


[이전]

1687년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국왕 크리스티안 5세가 미혼 여성을 소수집단으로 규정.


[이후]


1848년

스웨덴 작가이지 페미니즘 활동가 소피 사거(Sophie Sager)가 그녀의 집주인을 강간 혐의로 기소.


Dansk Kvindesamfund – ligestilling mellem kønnene

1871년

마틸데와 프레드릭 바예르가 덴마크에서 Dansk Kvindesamfund(덴마크 여성단체) 설립.


[배경]

Stockholm during the Age of Liberty - Wikipedia

(18세기)

스웨덴 자유 시대 초기 권력이 군주에서 정부로 옮겨질 때 여성을 위한 더 큰 자유를 포함한 정치적 철학적 논쟁이 증가되었다. 이러한 진보적 환경은 사유재산권과 간통에 의한 이혼을 할 권리를 준 1734년 민법이 반영된 것이었다. 


초기 계몽

Sophia Elisabet Brenner - Wikipedia

(소피아 엘리자벳 브레너)

처음으로 여성에게도 남성과 같은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한 여성 중 한 명은 스웨덴 작가이자 학식 있는 귀족 소피아 엘리자벳 브레너(Sophia Elizabeth Brenner)이다. 1693년 그녀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지적이라고 주장하며 '여성의 정당한 옹호 (The justified defense of the female sex)'라는 시를 발표했다. 또 1719년에는 스웨덴의 여왕, 울리카 엘레오노라에게 쓴 시를 통해 그녀는 남성과 여성은  외형을 제외하고서는 똑같다고 주장했다.


100개의 눈을 가진 괴물 아르고스 - 괴물 - 그리스신화

(아르고스)

1739년, 기자 마가레타 몸마(Margareta Momma)는 "아르고스의 그림자와 익명의 여성의 대화(Conversation between the Sahdes of Argus and an unknown Female)'에서 여성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요구를 이어받았고 여성들에게 토론을 할 능력이 없다 여겨 비판하는 사람들을 풍자했다.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촉구하고 유럽의 계몽주의에 영향을 받은 몸마는 귀족적은 불어를 쓰기보다 스웨덴어 사용을 촉진시켰는데 이는 보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생각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지적 인식


Hedvig Charlotta Nordenflycht - Wikipedia

(헤드위그 노던프릿츠)

또 다른 작가이자 사상가 헤드위그 샬롯타 노던프릿츠(Hedvig Charlotta Nordenflycht)는 여왕 울리카 엘레오노라의 장례식을 위한 시 '스웨덴 여자의 애도'로 1742년 문학계에 데뷔했는데 이 시는 그녀의 성을 위한 더 큰 권리를 확실히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몸마와 그녀의 많은 동년배와는 달리 노던프릿츠는 그녀의 작품을 실명으로 발표했다. 그녀는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나갔고 1753년에는 스웨덴 문학의 개혁을 추구하는, 또 노던프릿츠 그녀가 홍일점으로 있었던 스웨덴 문학 그룹 Tankebyggararoden에게 인정을 받는다. 그녀는 그 당시 최고의 작가들과 생각을 주고받기 위해 그녀의 집에서 살롱을 주최했다. '스스로의 재취를 발휘할 여성의 의무 (The duty of women to use their wit)'와 같은 시로 여성의 지성을 옹호하고 '여성의 옹호 (Defense of women)'로 여성 혐오를 반박하며 지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했다. 


과학의 언어


Lovisa Ulrika, 1720-1782, drottning av Sverige, prinsessa av Preussen, gift med kung Adolf Fredrik - Nationalmuseum - 39219.tif

(루이제 울리케)

노던프릿츠의 친구인 캐서리나 알그렌(Catharina Ahlgren)은 1764년에 루이제 울리케 왕비의 생일을 위해 그녀의 첫 시를 발표했다. 1772년 "Adelaide"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스웨덴어 저널에 출판된 수사학적인 편지를 썼을 때, 그녀는 이미 영어, 불어, 그리고 독어 작품의 번역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 편지에서 남성과 여성을 다루며 그녀는 이른바 사회적 행동주의, 민주주의, 성 평등, 그리고 남성 지배에 맞선 여성의 결속을 주장했고 진정한 사랑은 오직 여성과 남성이 서로를 동등하게 대할 때만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표했다. 우정은 편지 'Adelaide'에서 제일 자주 나타나는 주제이지만 도덕과 딸에게의 충고같은 다른 주제도 포함되어 있다. 알그렌은 또 에세이 '근대 여성 소피아와 베리신드, 생각을 논하다 (Modern women Sophia and Belisinde discuss ideas)'의 저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그녀는 불어 교육과 가벼운 로맨스를 비판하고 대신에 여성들이 영어, 과학의 언어, 그리고 담론을 배울 것을 지지했다.


[캐서리나 알그렌]

1734년에 태어나 궁정에서 스웨덴 왕비 루이제 울리케를 섬겼다. 루이제 울리케는 상습적인 음모가였고 결국 음모로 알그렌을 궁정에서 해고시킨다. 그 후 알그렌은 집필, 편집, 인쇄, 그리고 서점 운영으로 생계를 꾸렸다. 

알그렌은 결혼과 이혼을 2번 했고 4명의 자녀가 있었다. 

1782년 그녀는 핀란드로 이주해 핀란드의 튀르쿠에서 첫 신문 중의 하나인 The Art of Correct Pleasing의 편집자로 일했다. 

1796년 그녀는 스웨덴으로 돌아와 그녀의 여동생과 같이 살다가 

1800년 즈음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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