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녀들의 목욕사정
요시와라 유곽은 에도 (도쿄의 옛 이름)에 있는 거대한 집창촌으로, 요시와라의 유녀(매춘부)들은 손님을 배웅한 뒤 자고 일어나면 기루(창기를 두고 영업하는 집) 안에 있는 목욕탕에 들어갔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대중목욕탕 유야)
요시와라 유곽의 전성기였던 에도시대(1603~1867)에는 화재가 많기도 해서 집에 욕실이 있는 집은 별로 없었고, 서민의 대부분은 유야(湯屋)라고 불리는 대중목욕탕에 다녔습니다. 목욕시설만 따지고 보면은 기루는 당시의 서민과 비교해 보면 사정이 좀 더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유녀가 일제히 살창 앞에 앉아 손님을 기다린 것을 미세하리見世張り라고 했다.)
기루에 있어서 유녀는 상품이었기 때문에 매일 조금이라도 청결하게 한 후 가게에 내놓는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기루의 유녀들이 목욕하는 모습을 그린 우키요에浮世絵)
그런데 유녀들의 현실적인 목욕 사정은 그만큼 쾌적하다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그 기루에 소속하는 모든 유녀가 나와 목욕을 하기에 여자투성이의 매우 혼잡한 광경이었던 것이 이 당시의 우키요에로부터도 알 수 있습니다.
유녀의 머리 감기는 딜에 한번, 그 외의 날에는 빗으로만 정리
이렇게 매일 목욕을 거르지 않던 유녀들이지만, 머리는 매일 감아 깨끗이 할 수는 없었습니다. 원래 머리를 감는 것은 서민이라도 에도시대의 초기에 1년에 몇번 에도 중기에서 후기에도 달에 한두 번 정도 였다고 합니다.
(스모선수의 일본발)
(일본 여성의 일본발)
에도시대에는 남자도 여자도 일본발을 하고 있었기 머리를 감을 때에는 때문에 먼저 머리를 굳히고 있는 鬢付け油(빈즈케아부라), 채유(菜油)와 목랍(木蠟)으로 만든 머릿기름을 씻어내지 않으면 안 됐습니다. 이걸 씻어내는 게 꽤 힘들었다고 하네요.
(마이코, 게이샤 연습생 소녀, 사진)
요즘 마이코는 1주일에 한번 정도로 옛날보다는 빈번히 머리를 감습니다만 머릿기름을 씻어내기 위해 60~70번 정도 뜨거운 물에 머리를 담가 기름을 닦고 비누로 10번 씻고 샴푸로 3회 이상 씻지 않으면 깨끗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힘든 연습을 하는 스모선수들 중에서는 샴푸통 하나를 다 써버리는 선수가 있는 반면 식기용 세제인 퐁퐁으로 머리를 감는 선수도 있다고 합니다.
일본발을 하여 독특하게 화려하고 큰 상투를 틀던 유녀들은 머리를 잘 감지 못했습니다. 달에 한번 정해진 머리감는 날 이외의 날에는 머리가 가렵고 비듬이 걱정되어도 빗으로 빗질해 정리할 뿐이었습니다.
머리 감는 날은 기루 영업도 낮에는 쉰다.
(해조류의 일종인 청각채, 전라도 김치에 들어있는 그것.)
옛날 에도시대에는 요즘의 마이코나 스모선수가 쓰는 샴푸나 퐁퐁 같은 것은 당연히 없었습니다. 그 대신 청각채와 밀가루 등을 섞은 것을 샴푸로서 쓰였다고 합니다.
(「江戸名所百人美女 今川はし」歌川豊国 画)
유녀들의 머리가 길어 뜨거운 물이 많이 필요했는데 이 준비에 꽤 시간이 걸렸다 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머리 감는 날은 매월 27일이었는데 이날은 아침부터 가마에 물을 많이 끓여 고급 유녀부터 차례로 머리를 감았습니다. 기루의 영업도 夕七つ時(16時) 16시까지 낮에는 쉬는 날이어서 유녀들에게는 한 달에 한 번 기분 좋게 씻을 수 있는 기대되는 날이었다고 합니다.
[출처]
https://news.livedoor.com/article/detail/18966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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